그냥 그런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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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소리를 하면 우는 사람이 되고,
약한 소리를 하면 약한 사람이 된다.

인간의 언어에 positive feedback 효과가 있다는 건 대략 10년전부터 가져온 앎 중 하나이고,
그 효과를 긍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힘들어도 가능한 약한 소리 안하고
오히려 새삼 강한 소리를 해대는 게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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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자신의 내면적으로는 이 방법이 꽤 잘먹히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역효과일 수도 있다는 거다.

힘듦을 드러내지 않고, 어려움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고
우는 소리 약한 소리 한번 안하는 사람은,
그다지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나 보다.

'넌 너무 잘나서 적을 만든다'라는 둥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있다'라는 둥의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부끄러운 대사들을 몇년이나 계속 듣는 건 꽤 고문이다.
다리에서 떨어져 죽기 전에 손발이 오그라들어 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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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금은 우는 소리도 해볼까... 싶은 생각을 근 몇달동안 해보았다.
그래서 조금 해 보았고,
그렇게 하자 한번 새기 시작한 댐처럼 정신적으로 네거티브 감정들이 쏟아져나왔다.

역시 사람은 안하던 짓 하면 안되는구나 -_- 라는 결론.
그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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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
사람은 그냥 살던대로 살아야하나 보다.

나는 그냥 가던대로 가겠다.
위험한 다리 따위, 그냥 덤덤하게 건너야겠다.
어설프게 이도 저도 아닌 태도도 임하니 위험해 보였겠지.
그냥 확실히 덤벼보겠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20대 후반에 들어선 아저씨 주제에.
중2병 소리 들어도 할말 없지만.
어쩌겠어.

그냥 그런 놈인가보다 해야지.

완벽한 미완, 자유로운 질서, 君子之德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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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로서 너무 완벽한 존재는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다른 개체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淸水無魚랄까.

개체가 다른 개체와 어우러져 군집으로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단점이 필요하다.
많은 이야기에서, 천재는 싸이코고 부자는 성격이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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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의도적으로 조절하고자 했다.

결국 사람은 장단점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단점이 어떠한 것이냐에 따라 타인에 의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완벽히 단점을 없애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적당히 허용할 수 있을만한 의도적인 단점을 컨트롤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약간 건방지고, 기억력이 나쁘고, TV나 패션에 관심이 없고..
적당히 인간적이지만 그다지 흠이 되지는 않고 일에 방해되지는 않는 정도의 단점들을
굳이 고치지 않고 드러냄으로서 불완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일에 있어서는 거의 완벽하지만 타인들과의 팀웍을 이끌어내기에 적절할 정도의 불완전성.

완벽한 미완. 그런 것을 추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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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결과론적으로도 과정론적으로도 기만이다.

사람은 결국 단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점을 없애고자 노력한 끝에 어쩔 수 없이 남은 단점이지,
의도적으로 이것이 나의 단점이다라고 드러낸 단점이 아니다.

이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단점들을 드러냄으로서,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을 가리는 용도로 활용하려 했을 뿐이다.

또한 적당히 단점을 남겨두겠다는 어설픈 마음가짐이
정작 중요한 일에서도 실수를 만들고, 헛점을 벌린다.

그런 기만적 발상을 가진 사람에게 사람이 모여들진 않는다.

사람은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완벽해지진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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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어떤 규칙을 따를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 규칙이 작고 강력할수록 더 자유로워진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쫓는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라고.

더 근본적인 질서를 추구할 수록 자유롭다.
더 완벽한 질서를 쫓는 사람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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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잎과 같다.

군자를 오늘날 팀의 리더로, 소인을 팀원으로 생각하자면
리더는 팀원들의 의지를 바람에 넘어지는 풀잎처럼 부드럽게 일치시켜줘야 한다는 거다.

한명 한명을 붙잡고 이쪽으로 넘어져 달라고 사정하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다.
조금은, 바람의 강도를 높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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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택은 나에게 있어서 옳은 것이지만
과연 타인에게 있어서, 내 팀원들에게 있어서도 옳은 것일까?

어렵다.

자유를 강요하는 독재자

최근 리더로서의 나를 정의하자면 그 정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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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다.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은
즉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선택한다는 것이고
그 가치관의 선택은 다시 말해 규칙의 선택이다.

즉, 자유란, 어떤 규칙을 따를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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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좋아한다.
자유가 없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세대가 만든 교과서로 공부한 그 이후의 세대또한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유'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자유를 이용하여
타인에게서 주어지는 규칙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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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를 좋아한다.
강압적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능률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억눌려 일하는 사람보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내 기준에서 명백한 사실도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10대 시절부터 20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까지,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없이 반복해서,
배신당하고, 실망해왔다.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시키는 대로만 하겠습니다"이자
"시키지 않으면 안하겠습니다"이다.

자유로운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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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없던 시절에는, 자유라는 것을 가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흡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자유가 존재하는 현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갖고 있지만 자유를 쓰지 않는다.

"선택해라"고 하면 "대신 선택해주세요"라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세대이다.
"그래도 선택해라"고 하면 몇달이 지나도록 "모르겠어요"만 반복하는 세대이다.
"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인체 하는 것으로서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줄 아는 세대이다.

나는 그렇게 그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자유를 강요한다.

그리고, 보다못해 선택을 제시해주면
'너무 간섭한다'고 투덜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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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이 자유 그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닐 것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책임을 싫어하는 것이다.

자유를 주려면 책임도 지워줘야 한다.
자유를 빼앗으면 책임도 빼앗아야 한다.

나의 목적은 그들이 자유를 활용하게 하는 것이니까,
자유는 주고 책임은 내가 짊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실망할대로 실망하고 포기할만큼 포기해서
오히려 다소 교육자의 마인드가 된 지금으로선 그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그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은 리더인 내가 지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서 책임감마저 빼앗는다면,
그들은 사회에 나가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들의 선택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가 될 것이 뻔함을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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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유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 편이 자유를 강요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언제나 해결안은 마법의 단어 "적당히"다.
극단적인 자유도, 극단적인 부자유도 좋지 않다.
적당히, 또 해봐야겠다.

PIFF - 밴드명 : 올 댓 아이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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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감상 : 이것은 좋은 오그라듦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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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폴란드. 사회주의시절. 자유노조와 정부의 대립이 거세져갈 즈음. 군사정부. 계엄령.

18세. 자유를 부르짖는 펑크락 밴드. 4명의 소년들.
보컬. 개방적인 군인인 아버지. 자유노조인 어머니.
자유노조 아버지를 둔 여친과 친구.

그리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10대의 사랑. 우정. 반항. 일탈.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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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들을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게 잘 표현한 작품.

보고나서 이틀이 지나니
여친이랑 싸우고 울먹이며 길을 걷던 아해의 삐죽 튀어나온 오리주둥이만 기억에 남는다능. ㅋ

전반적으로 음악 좋고, 연출 좋고, 복선 적당하고,
배우들 연기 좋고, 적절한 개그씬 좋고. 19금 배드씬 굳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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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부산 살면서 국제영화제 한번도 안갔었는데,
표를 제공해준 하양에게 캄샤.

영화등급이 19금이라, 배드씬이 있는데... 씬 자체는 그리 강하진 않았지만
...야외상영장에서 5천명이 같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촘 그랬심.

영화 시작하기 전에 오프닝 공연으로 국내밴드 하나가 와서 30분 정도 공연했는데..
같은 음과 가사가 계속 반복되고 시끄럽기만한 클럽음악 같은 거라, 별로 취향에 안맞기도 하고 저게 영화랑 무슨 관계지 했는데..
영화 보고 나니 좀 어울리는 듯. 청춘의 풋풋함, 미성숙함, 제멋대로임 같은 게 비슷하달까.
일부러 그런 느낌까지 고려해서 밴드 초청한 거라면 진행측 좀 대단한 듯.

영화 끝날 때 쯤 비가 조금 왔는데,
어떡하나 하면서 그냥 맞고 있었더니 진행측에서 비옷 나눠줬음.
역시 국제행사이니 준비가 철저하구나 싶었심.

영화 시작하기 전에 감독이랑 주연배우가 인사하고 갔는데,
그럭저럭 박수 좀 쳐주긴 했지만
영화 끝나고 인사했다면 기립박수 받았을지도.

아아- 잘 봤다.





사진 출처는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소개 페이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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