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기어스 감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편의 내용(결말)과 깊게 관련이 있으니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은 보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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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작품이 데스노트에서 영감을 얻었음은 명백하다고 봅니다.

데스노트에서 라이토가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한 뒤 죽일 수 있었던 것에서,
'죽음'이라는 요소만 쏙 빼면 루루슈의 기어스가 되고,
그 사용방법에서 치밀하게 계산하는 두뇌싸움이 내용의 주라는 것도 있습니다만,
이는 외부적인 요소이고 조금 더 내부적인 닮은 점을 보자면

라이토도 처음에는 '범죄가 없는 세상을 만드록 싶다'라는 순수한 이상을 갖고 키라짓(?)을 시작했죠.
하지만 결국 L, 니아와 이어진 두뇌싸움 끝에 자기 목숨과 승부를 위해 사람을 죽여대다가, 갈수록 추악하고 비참해져가죠.

하지만, 만약 라이토가 좀 더 철저하게 순수한 이상을 갖고, 더더욱 잔혹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그리고, 단순히 그를 잡고자하는 반대 세력만이 아닌, 서로 다른 이상향과 방법을 갖고 추구하는 이들과 싸워나간다면?

이라는 발상이 이 작품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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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코드기어스라는 작품을 부조리한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각자의 방식을 가진 여러 인간들이 충돌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은 작품 내의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공유하는 공통된 의식이고,
그 각각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행위는 또다시 다른 캐릭터에게 있어서 부조리가 되고..
그런 연쇄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기어스라는 힘을 갖게 된 한 소년이 다소 막장스러운 방법으로
다른 이상향과 방법을 가진 사람들과 싸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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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서로 다른 이상향과 방법론을 갖고 있었던 주요인물들을 나열해보자면,

1.유페미아

모든 것을 포용해내는 아가씨죠.
스자크와 함께 1기에서 루루슈의 최대의 경쟁대상이기도 합니다.
침략국의 황녀이면서 식민지 사람들을 포용하고, 자신을 노리고 위협하는 이들조차도 포용하는.
어찌보면 가장 이상적인 부조리의 해결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이가 알아주진 않는다는 거죠.
그 주변의 인물들 하나하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뜻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하고,
결국 그 포용은 모두에게 골고루 이로운 것이 되지 못하고.. 또다른 부조리가 발생하고.

결정적으로 주인공인(-_-) 루루슈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받아들이긴 하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못했을때의 계획대로 됐으니)
비참히 무산되고 말지요.

2.샤를

거짓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
이 세계관에서 가장 큰 부조리 -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 - 를 만들어낸 장본인입니다만,
결국 또 사실은 사정이 있었다.. 는 식으로 나오죠.

어릴때부터 겪은 황위쟁탈싸움을 통해 인간의 '거짓'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이 아저씨가 내세우는 방법은 결국 에반게리온의 세컨드 임팩트의 수많은 아류 중 하나이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의사소통의 장벽을 없애고, 의식을 공유함으로서 거짓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어째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이 방식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초현실적인 판타지의 방법이라 불가능.

또한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희생을 필요로하고, 그 동기가 남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인지라
역시 주인공에 의해 기각;;

3.슈나이젤

무력과 공포에 의한 통제.
이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끊이지 않는 소재 중 하나죠. 라퓨타, 나디아.. 등등.
어찌보면 미국이 핵폭탄으로 일본을 굴복시킨 역사의 연장선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들어내고 보면 마음에 안든다고 생각하는 건 누구나 같을 듯.

나름 현재 우리 현실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는 걸 생각해보면 꽤 현실적인 방법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많은 분들의 평가대로 저런 대사를 시청자들에게 읊조리며 가면을 벗었을 때 패배는 확정되어 있었죠. ㅋ

4.나나리

현실에의 적응과 만족.
눈과 다리를 잃고, 버려지고,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숨어지내면서도
언제나 그 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에게 부드러우며 현실에 불만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마지막화에서 루루슈와 유사함을 보이나 이에 대해서 저는 슈나이젤이 만들어낸 상황에 적응하고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적의 방향을 찾아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방법또한 유페미아의 방법과 함께 상당히 편안한 방법인데,
결국 세상이란 인간이 인식하기에 따른 것이라, 자신이 만족할 수 있으면 굳이 세계를 뜯어고칠 필요없이 행복을 찾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 방법으로 편해지는 것은 자기자신 뿐이며, 타인에게 같은 방법을 전도하는 것 외에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는 방법이라는 게 문제. 실제로 가장 가까운 루루슈는 시궁창을 살았으니;

5.스자크

1기 - 시스템 내부에서의 개혁.
어지간히 고집센 인간이죠. 어떻게든 자기 나라를 침략한 침략국의 법이라도 법은 지키며, 그 범위 안에서의 행동만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만, 법치국가에서 정상적인 법만이 재정되어있다면 이상적인 방법이겠죠.

하지만 그 법이란게 권력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식민지라는 설정인지라.. 끝끝내 시청자들에게 동의받지 못하고 매국노라는 이름만 뒤집어쓰는 방식이 되었죠. 과연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 싶긴 합니다만;


2기 - 루루슈에 동참
1기에서 어찌됐든 고생해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고, 더 높은 자리를 원하긴 하지만 2기 초중반에 이래저래 흔들리다가 결국 기존의 방법을 포기하고 루루슈에 동참하는 식으로 가더군요.

몇가지 해석은 가능하겠지만, 가장 큰 건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했던 법을 만드는 존재(황제 샤를)부터가 엉망진창인지라 그 법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 게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스토리를 위하여(!) 빠르고 확실하게 세계 대부분의 부조리를 없앨 수 있는 주인공(!!) 루루슈의 방법에 동참하죠.

6.루루슈

1기 - 시스템의 파괴/재구성.
기존의 시스템인 브리타니아 그 자체를 대변하는 황제에게서 버려진 존재인만큼, 그것을 박살내고 다시 만들어내겠다는 방식을 취합니다. 1기에서는 아무래도 버려진 것에 대한 복수와 당장 동생의 안정된 생활을 확보하기 위한 마음이 급급했던 형태라, 브리타니아를 박살내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있죠.
그렇게 박살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나나리에겐 어떻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낼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오히려 정말 당장 동생 한몸의 안위만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이상향으로 뜯어고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잡는 건 그 동생(과 가짜동생까지)을 잃은 2기 후반에 들어서야 보여지지요.


2기 - 증오의 대상을 한정하고 제거함으로 인한 연쇄의 단절
이 작품에서 대체로 보여주는 '세상의 부조리의 원인'으로서 큰 줄기 하나가 바로 증오의 연쇄이지요.
샤를과 V.V는 어릴때부터 황위다툼에서 많은 상처를 입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수많은 피를 흘리고, 그 과정에서 마리안느가 죽고, 루루슈와 나나리는 버려지고, 루루슈에 의해서 또 수많은 피를 흘리고.. 또 누군가는 이름모른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 싸우고, 그 복수의 복수를 위해 싸우는 누군가가 나타나고..
앞서 보여준 여러 방법들 또한 끝이 없는 이 연쇄를 없앨 방법들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그 '연쇄'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를 극단적으로 고민한 형태가 이 방법이라고 봅니다.

폭군이 있고, 수많은 악업을 쌓아 전 세계로부터 미움받는 그 절대악이 되고, 
그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자잘한 다툼은 별것 아닌게 되고,
그 절대악이 영웅의 손에 쓰러지면서 세계는 평화로워지겠죠.
다른 점이 있다면 루루슈 본인은 그 영웅이 아니라 마왕이라는 것.

사실 조금은 식상하기도 하지만 꽤 재밌는 발상이었고, 이 작품 특유의 훌륭한 연출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어떤 큰 증오라 할지라도 다른 이를 향한 작은 증오를 덮을 수 있는가.. 는 의문이군요.
현실이라면 루루슈가 사라진 뒤 다시 그 전에 쌓여있던 자잘한 증오들이 도로 터지지 않을지.

그리고 그 이전에 '세상 모든 이로부터 기존의 증오를 잊을 정도로 증오받는다'라는 게... 만화니까 가능한 거겠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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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코드기어스의 세계관은 결국 루루슈에 의해서 구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최후에 승리한자가 다른 인물이었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비현실적인 샤를의 방식은 논외로 치고 스자크(1기)였다면? 슈나이젤이었다면? 나나리였다면? 유피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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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피의 방법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Christ계열 종교의 방법과 닮았고..
나나리의 방법은 무욕의 경지에 이른 불가의 방법에 닮았고,
슈나이젤은 현실적인 '충격과 공포'의 세계경찰 미국과 닮았고,
스자크(1기)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해볼만한 그나마 해볼만한 방법.
샤를은 뭐.. 에바교(?) 숭배자시고.
루루슈는 데스노트 라이토의 뒤를 잇는 그나마 조금 색다른.. 마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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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문제시삼고 있는 요소인 증오의 연쇄, 즉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루루슈의 방법이 꽤 좋았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세상의 부조리란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죠; ㅋ

이래저래 대단한 척을 많이 하지만,
결국 코드기어스의 세계관에 존재하는 부조리들은,
알기 쉬운 증오와 욕망들로 인해 생겨나서 전쟁이나 학살이나 피튀기는 분투가 일어날 정도로 단순한 것들 뿐입니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전쟁같은 건 저 먼나라 이야기일 정도로 평화롭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조리가 없진 않죠.
현실의 부조리는 전쟁처럼 단순한 것이 아닌지라 위에 나열된 캐릭터들이 제시하는 방식으로 쉽게 해결될 것들이 아닙니다.

결국 이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래저래 단순화시킨 세상을 대상으로 몇가지 방법에 대한 시뮬레이션 정도인지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기본적인 마음가짐 정도라면 제시해줄지 몰라도.

결국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일 뿐.
세상의 부조리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그런 거 알고 있으면 작가가 직접 했겠죠 -_-
나름 이 작가게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부조리를 해결하고자하는 마음가짐을 한명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퍼뜨리는 정도가 최선이었다고 보면 되겠군요. (좀 꿈보다 해몽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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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인물들도 꽤 있으나 비중이 적어서 안습이랄까요.
나름 조직의 리더로서 조직원들을 위해 살아가는 오우기나, 동경하는 이를 따르는 카렌, 충성에 모든 것을 거는 제레미아나 신쿠, 애국심으로 똘똘뭉친 토우도, 카구야, 빠돌이 편집광 디트하르트, 매드엔지니어 로이드, 조금 덜한(?) 락샤타, 즐거움을 퍼뜨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미레이 등등..

이 작품에 흘러넘치는 '세계를 갈아 엎을 정도로' 대단한 방식들이 아니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름의 이상향을 쫓는 캐릭터들이죠.
나름 각각 따로 다른 작품에 나왔으면 보통의 주인공급의 근성을 보이는 캐릭터들도 꽤 있는데 말이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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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시각이 많이 들어간 것 같긴 하지만; 제가 보는 이 작품의 기본 주제는 이렇습니다.

그런데 적당한 정도에서 그쳐줬으면 좋았을텐데;
어째 작품에 로봇 좀 나오면 멋질 것 같고,
주인공은 학생으로 학원물의 요소도 들어가면 좋을 것 같고,
아더왕 신화를 토대로 왕족이니 귀족이니 나오면 재밌겠고,
세계관을 짜다보니 이런 캐릭터 저런 캐릭터 수십명이 들어가고 각각의 스토리도 다 만들어지고..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넣으려다보니
너무 복잡해져서 주제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이 나왔죠 -_-;

나름 제작자의 입장에선 그 많은 요소를 다 집어넣는 것도 한번 도전해볼만한 시도라고는 생각하고,
그 엄청나게 밀도 높은 연출방식을 저는 꽤 재밌게 즐겼습니다만..
거슬려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더군요.

과연 이 작품이 로봇이니 비행전함이니 SF적 요소를 배제한 데스노트 정도의 현실적인 배경에서,
코믹한 요소나 모에코드 다 빼고 처절하게 고뇌로 가득찬 사투만 남아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ㅋ
(프라모델이나 피규어 안팔릴테니 그렇겐 안만들겠지만;; 오히려 고뇌를 빼고 모에만 남기면 남겼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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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한동안 꽤 재밌게 봤던 작품이 끝나버렸군요.
뭐 선라이즈이니 DVD특전이니 뭐니 하면서 앞으로 몇달은 더 우려먹어 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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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샷찍기 귀찮아서 이글루스에서 쓸만한 것들 좀 끌어다 썼습니다;
스샷찍은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설마 저작권을 주장하시진 않겠죠;

덧글

  • 狂工크랜 2008/10/02 12:51 # 답글

    다시 생각해보면 꽤 재밌는 것이..
    작품에 '악역'이라고 할만한 인간들도 모조리 '세상을 구원하겠다'라고 외치지,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서 움직이는 인간들은 귀족 몇명이나 중화연방의 환관들 정도뿐이라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다른 작품들보다 캐막장을 달린다는 거 -_-;

    인간이 가장 무서울 때는 자기가 정의라고 생각할때라는 건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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