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완성.
나중에 시간나면 스샷첨부하겠습니다.
#
전뇌코일 1화에서,
이사코가 전철 창 밖으로 보이는 '안개'를 보며 '오래된 공간이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귀신이나 영혼과 관련된 퇴치물 종류인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만큼 일본의 무녀, 잡신, 귀신에 대한 이미지가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많이 퍼져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고,
전뇌코일 또한 그러한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역할을 작품의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화 이후로도,
초반부에 아이들의 눈에는 사악한 악령같은 역할을 하는 '서치'가 신사에는 들어갈 수 없다든 사실이나,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대한 꿈, 전뇌공간에 사람의 영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등
이 작품은 마치 영혼이나 신, 무녀에 관련된 기존의 수많은 재패니메이션과도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이름의 한자의 독음과 훈음을 다르게 읽는 방식에서 비롯되는
두 주인공인 유우코들의 별명 -이사코, 야사코-,
그리고 '저 쪽'의 횡단보도에서 들리는 일본 특유의 멜로디 등에서
'일본의 문화'를 작품에 담아내고, 그것을 보는 이들 - 기본적으로는 자국민(특히 어린이)들, 더 나아가 외국인(우리)들 - 에게 심어주고자하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서치가 신사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그 곳이 신성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관리부서가 다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안경'을 통해 보이는 것들이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것을 점점 보여주면서
이 작품은 마치 신비물 같았던 초반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보는 이들에게 '현실'을 던져주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보여준
유비쿼터스 환경이 극단적으로 발달한 모습과, 가상현실과 현실을 조합한 혼합현실의 실질적인 청사진을 보여줌으로서
앞으로 십수년 이내로 다가오게 될 미래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또한, 특히 주인공 야사코와 전뇌펫 '덴스케'의 관계를 비롯해, 그리고 여러 '일리걸'들이나 전뇌펫들과의 에피소드 등을 통해
가상의 프로그램, 즉 인공생명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다시 한번 하게 해줍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점에서, 마치 '이웃의 토토로'에서의 토토로나 여러 정령들과 비슷한 존재로 간주해버리고 있지요.
그러면서, 마지막화의 결론을 통해,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국 아주 가까이에 존재하는 무언가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자칫 단순히 딱딱하고 차가운, 멀리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쉬운 '최첨단'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켜주려는 의도까지도 보입니다.
#
그와 동시에,
그러한 신비한 것 처럼 보이는 현상들, 사실적이고 대단한 기술들 뒤에 숨어있던
관료제의 답답한 운행으로 인한 비합리적인 시스템의 관리,
추악하고 지저분한 기업과 기업간의 경쟁, 그리고 이를 은폐하려는 어른들의 모습들을 통해
진짜 '현실'이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서,
보는 이들에게 관료제의 불합리성이나 심지어 기업윤리에 대해서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 - 혹은 경고- 까지도 제공합니다.
#
게다가,
(사실 가장 중요한 주제이면서도 다른 부분들의 연출에 밀려 마지막 2회 정도에 압축되면서 다소 퇴색되긴 했지만)
두 주인공인 이사코와 야사코,
대인관계에 서투른 아이와, 대인관계에 한번 실패를 겪은 아이
이 둘의 모습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지금도 이미 인터넷, 휴대폰의 문명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시대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다가올 유비쿼터스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불완전하나마 하나의 답안이 될 수 있는 예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 작품은,
청소년들에게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의도
바람직한 사회관, 기업윤리를 심어주겠다는 의도
앞으로 다가올 현실적인 기술들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거부감을 없앰으로서, 그에 대비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의도
일본의 문화를 시청자에게 심어준다는 의도
이 모든 의도를 담아내는 데 성공하면서,
보는 이 대부분이 보았을 때 '이웃의 토토로와 닮았다'라고 떠올리게 만드는 친숙한 모습,
잔잔한 풍경에서 화려한 액션을 아우르는 지루해질 수 없게 만드는 훌륭한 연출을 통해 표현해낸
애니메이션으로서 수작이며
특히 교육용 애니메이션으로서 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시간나면 스샷첨부하겠습니다.
#
전뇌코일 1화에서,
이사코가 전철 창 밖으로 보이는 '안개'를 보며 '오래된 공간이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귀신이나 영혼과 관련된 퇴치물 종류인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만큼 일본의 무녀, 잡신, 귀신에 대한 이미지가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많이 퍼져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고,
전뇌코일 또한 그러한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역할을 작품의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화 이후로도,
초반부에 아이들의 눈에는 사악한 악령같은 역할을 하는 '서치'가 신사에는 들어갈 수 없다든 사실이나,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대한 꿈, 전뇌공간에 사람의 영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등
이 작품은 마치 영혼이나 신, 무녀에 관련된 기존의 수많은 재패니메이션과도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이름의 한자의 독음과 훈음을 다르게 읽는 방식에서 비롯되는
두 주인공인 유우코들의 별명 -이사코, 야사코-,
그리고 '저 쪽'의 횡단보도에서 들리는 일본 특유의 멜로디 등에서
'일본의 문화'를 작품에 담아내고, 그것을 보는 이들 - 기본적으로는 자국민(특히 어린이)들, 더 나아가 외국인(우리)들 - 에게 심어주고자하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서치가 신사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그 곳이 신성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관리부서가 다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안경'을 통해 보이는 것들이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것을 점점 보여주면서
이 작품은 마치 신비물 같았던 초반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보는 이들에게 '현실'을 던져주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보여준
유비쿼터스 환경이 극단적으로 발달한 모습과, 가상현실과 현실을 조합한 혼합현실의 실질적인 청사진을 보여줌으로서
앞으로 십수년 이내로 다가오게 될 미래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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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특히 주인공 야사코와 전뇌펫 '덴스케'의 관계를 비롯해, 그리고 여러 '일리걸'들이나 전뇌펫들과의 에피소드 등을 통해
가상의 프로그램, 즉 인공생명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다시 한번 하게 해줍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점에서, 마치 '이웃의 토토로'에서의 토토로나 여러 정령들과 비슷한 존재로 간주해버리고 있지요.
그러면서, 마지막화의 결론을 통해,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국 아주 가까이에 존재하는 무언가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자칫 단순히 딱딱하고 차가운, 멀리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쉬운 '최첨단'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켜주려는 의도까지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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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그러한 신비한 것 처럼 보이는 현상들, 사실적이고 대단한 기술들 뒤에 숨어있던
관료제의 답답한 운행으로 인한 비합리적인 시스템의 관리,
추악하고 지저분한 기업과 기업간의 경쟁, 그리고 이를 은폐하려는 어른들의 모습들을 통해
진짜 '현실'이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서,
보는 이들에게 관료제의 불합리성이나 심지어 기업윤리에 대해서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 - 혹은 경고- 까지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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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사실 가장 중요한 주제이면서도 다른 부분들의 연출에 밀려 마지막 2회 정도에 압축되면서 다소 퇴색되긴 했지만)
두 주인공인 이사코와 야사코,
대인관계에 서투른 아이와, 대인관계에 한번 실패를 겪은 아이
이 둘의 모습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지금도 이미 인터넷, 휴대폰의 문명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시대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다가올 유비쿼터스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불완전하나마 하나의 답안이 될 수 있는 예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 작품은,
청소년들에게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의도
바람직한 사회관, 기업윤리를 심어주겠다는 의도
앞으로 다가올 현실적인 기술들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거부감을 없앰으로서, 그에 대비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의도
일본의 문화를 시청자에게 심어준다는 의도
이 모든 의도를 담아내는 데 성공하면서,
보는 이 대부분이 보았을 때 '이웃의 토토로와 닮았다'라고 떠올리게 만드는 친숙한 모습,
잔잔한 풍경에서 화려한 액션을 아우르는 지루해질 수 없게 만드는 훌륭한 연출을 통해 표현해낸
애니메이션으로서 수작이며
특히 교육용 애니메이션으로서 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狂工크랜 2007/12/03 22:05 # 답글
뱀발. 쓰다보니, 윤송이 박사의 MIT박사논문이 대충 '덴스케'의 원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암흑요정 2007/12/04 13:50 # 답글
꼭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었으면 하는 교육 애니메이션이네요.
狂工크랜 2007/12/04 16:19 # 답글
암흑요정님/ 하지만 가장 위쪽에 있는 '일본의 문화전달'의 의도가 아주 깊다는 점에서, 오히려 너무나 대단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그다지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군요.횡단보도 건널떄 나는 소리야 이미지를 조금 포기하자면 우리나라의 '띠리리리-'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신사들과 토리이로 가득찬 배경과 여름축제모습 같은 건 수정할 수도 없고, 주인공들의 이름을 읽는 방법에 따른 별명들도 중요한 요소라 함부로 수정하기 힘들죠.
('저쪽'에 대한 꿈속의 장면이 토리이가 죽 나열된 계단.. 이라는 설정은,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러한 의도를 다른 나라에서 함부로 삭제시킬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서 철저히 계산되어 선택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대운동회'가 우리나라에 방영되었을 때 교장선생의 기모노를 서양식 양복으로 수정하거나 'J데커(K캅스)'에서 일장기를 태극기로 수정해낸 사례를 보고 이후 더 개선된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닌자와 사신 같은 일본식 이미지들에 심하게 물들어있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왜 우리나라에는 신사가 없나요?'라고 하거나 자기 이름의 한자를 일본 식으로 읽고 있는 것도 난감하지 않을까요. (이름의 한자의 뜻을 파악해서 순우리말로 바꿔본다는 정도의 시도는 괜찮을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애니메이션 이상으로 '한국의 문화'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이 필요한데, 애니메이션은 고사하고 영화든 드라마든 만화든 이런 문화적 이미지 전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狂工크랜 2007/12/04 16:21 # 답글
우리나라에 소개를 하자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이상의 학생들에게 보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작품 자체도 좀 어려워서 중학생 이하는 이해하기도 힘들겠지만.. 이미지에 의한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사실 고등학생 이상도 좀 불안하고 말이죠 ^^;)
狂工크랜 2007/12/04 16:54 # 답글
아즈망가의 '오사카'를 '부산댁'으로 바꿔냈던 센스있는 편집이 있다면 어느 정도 그 의도들을 역이용하는 것도 가능할 수도 있지만, '전뇌코일'은 그러한 시도마저도 불가능하도록 철저한 계산하에 설계되어있지요.그런 의미에서도 참 대단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컷 단위로 영상을 자르거나 편집하고 완전히 대본을 새로 써서.. 거의 아이디어와 영상만 가져온 새로운 작품으로 재편집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저작권도 있고 그럴 능력있는 사람도 없으니 힘들다고 봐야겠죠 ㅡ,.ㅡ;;
역시 우리나라에서 이런 작품이 하나 나오는 게 좋을텐데..
다른 분야라고 해서 스토리나 연출에 마땅히 뛰어난 인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영화, 드라마가 아닌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요소들을 많이 사용하여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작품이기도 해서, 애니메이션 사업이 많이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로서는 한동안 이만한 작품은 만들어내기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狂工크랜 2007/12/04 17:07 # 답글
그 외에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2D와 3D 섞어 사용함으로서 제작과정도 상당히 효율적이었을 것 같고.. 이 애니의 대단함은 끝이 없군요.좀 눈에 띄는 문제라면 유행의 흐름에 대한 반영이 좀 부족하고, 너무 앞서나간 기술들을 보여줌으로서 보는 이들이 좀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거..
전달매체로서의 의미, 교육적 목적을 떠나 하나의 사업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을 생각하자면 심각한 문제일 수 있지요.
하지만 아마 앞으로 유비쿼터스기술과 혼합현실기술이 점점 실용화됨에 따라, '몇년 전에 이 작품에서 소개되었던 개념이 현실화되고 있다'라는 식으로 다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안/각본/감독을 겸하신 이소 마츠오씨가 아직 40대 초반이니.. 앞으로 더 보완된 작품이 더 많이 나오겠지요.. 일단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온푸님 2007/12/05 16:49 # 답글
안녕하세요, 코일관련해서 자주 들렀습니다. 과학적인 시점에서 봤던 블로그가 없었기에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정말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狂工크랜 2007/12/06 18:40 # 답글
온푸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
동용 2007/12/07 00:33 # 삭제 답글
이 작품은 제작자의 관점에서 본 명작이라고.... 시청자의 관점에서 본 명작이 아니란 말씀이지...제작자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가져본 사람만이 이게 명작이란 걸 알아차릴 뿐이지...
감독이 애니메이터 출신이라서 그런지 본연에 매우 충실하다는 게 핵심이다.
야사코 걷는 셀뱅크 (반복동작그림) 는 정말 우수했지... 색채지정도 정말 우수했고.
망하든 살든간에 이런 게 나온다는 게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옛날 옛적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같은 것도 그랬지... 미야자키를 비롯한 일당들이
회사에 떼써서 제작비를 2배로 받아낸 뒤에 다 탕진해 버리고 나중엔 돈이 없어서 무보수로
그려서 만든 뒤 광고비가 없으니 애니메이터들이 거리에서 피켓들고 시위하듯이 홍보하고...
결과적으로 폭삭망하긴 했지만 불멸의 명작으로 세상에 남아있지....
미친짓이라 할 지언정 일단은 참아주고 형식이 이뤄질 때까지 집착을 보인다는 게 일본답다고 할까
이것도 나중에 정말로 뛰어난 명작으로 재평가 받을 날이 오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게 나올 거라는 건 꿈꾸지 않는 게 좋을 듯.....
솔직히 말해서 이 전뇌코일도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상투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
좀 안타깝긴 하다.... 나디아처럼 말이지....초기에는 진심을 담아서 잘 만들더니....결국....
하지만 내가 만드는 스튜디오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것임... 시장을 무시한 공산주의 체제니까..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느긋하게 낮잠을 좀 자다가 오후 3시에는 바순을 불 수 있는 그런 여유라고 생각함...
문화라는 게 결국 남는 여력을 가지고 노는 거라고 생각하면..... 여유가 없이 좋은 내용이
나올 수는 없겠지... 그런 여유가 필요해... 아직은 너무 여유가 없군....
언제던가..... 유명한 미국게임회사 사장(중국계 여자...)가 한 말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실력이 뛰어나지만 단지 상향평준화 되어 있을 뿐 특출한 자가 없다...
근면 성실하고 품질을 보증할 뿐 비지니스이상의 아티스틱한 관계를 맺을 자질이 없다..
....이 글을 보고 3D하는 사람들이 수긍을 전혀 하지 않더군... 하지만 진실이 담겨 있지...
즉슨 창작의 선구가 될 자질은 전혀 없고 그냥 돈주고 부려먹기에 딱 좋은 족속이란 이야기니까..
뭐......복잡한 사연이 있겠지만.....결국은 여유의 부재에서 모든 것이 출발하지 않았나...싶다.
아무리 우수한 장비를 갖추고 기술을 발전시킨들 뭐하겠는가. 여유에서 나오는 진심이 없는데...
진심을 가지고 이 장면에서 내가 정말 꼭 보여주고...보는 사람이 알아 줬으면 하는 게 뭔지를
자각한다면 명작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적어도 전뇌코일정도의 진심이라면 바랄게 없겠는데.
참.....저기 모 분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한다고 하셨는데
난 절대로 소개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임....
이런 좋은 것은 알아 보는 사람만 독점해서 봤으면 하는 심뽀라서....^^
狂工크랜 2007/12/08 14:58 # 답글
검색하다보니 이래저래 이해관계에 얽혀서 뉴타입쪽에서는 아예 실어주지도 않고 홍보를 많이 못했다는 이야기도 보이던데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그림체를 좀 너무 토토로를 떠올리도록 만든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네요. 가상공간과 인공생명체들을 토토로처럼 '이웃의' 친숙한 존재로 만들고자한 의도인 것 같긴하지만..
딱 처음 봤을 때 느껴지는 첫인상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고 신선하지 못한 건 사실이니 말이죠.
'성공'에는 아무래도 이래저래 운이나 시기 같은 것들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으니까요.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좀 창의력으로 승부하려는 근성이 부족한 느낌이 있죠.. 남들이 쓰는 거, 남들이 하는 걸 조금 더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많이 목매이고 있으니..
전체주의적 사고가 문제라는 건 일본 쪽에서 더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어중간하게 전체주의적이기 때문인지 오히려 튀어나가려는 사람은 더 적어서 문제랄까요 ㅡ,.ㅡ;;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통일성을 강조해버리면.. 몇몇은 좀 특이한 인물도 나오지 않을까 싶지만.. 이야말로 더욱 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포기하는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이군요 ;;;
동용 2007/12/10 00:36 # 삭제 답글
야사코의 여동생이 메이 닮은 거 말이군.... 글고 끈적끈적한 그림자는 원래 일본식 요괴아닌가..글고......창의성 문제는 여유 외에 요인으로 문치주의와 무치주의간의 차이라고 본다.
무치주의라 하면......일본과 유럽이군.... 칼로 다스리는 나라들이 역설적으로 창의성이 있다는...
아마도 목숨이 언제든지 경각에 있을 수 있다는 자각에서 오는 역설적인 진정성이 아닐까 싶음.
나도 가끔씩 왜 사나 하고 생각을 하곤 하지..... 그러나 죽음이라는 명제가 있기에
진정성을 되찾고 다시 사는 것에 매진하게 된다....일본의 경우에는 무사의 칼외에 자연재해도 있고.
유럽의 경우에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전쟁의 나날을 1000년 이상 보냈으니...
2차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시인이 쓴 이런 글귀가 있지....
너무나 참혹하고 많은 죽음이 도처에 널려있었기에....
거기서 오히려 거칠 것 없는 자유를 발견했다.....
그 당시에는 이상하리만치 찬란한 그 무엇이 죽음의 너머에서 빛나고 있었지...
오직 그대만이 세상의 운명을 짊어 지고 있다는 묘한 사명감에 모두들 불타고 있었다....
창의성이란 이렇듯이 철저한 "죽음의 자각"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군...
개똥밭에 구를 지언정 이승이 좋다고 하는 한국인들의 무의식에서 창의성은 기대하기 곤란인가?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죽어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자각한다고 하면....
무언가 내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강렬한 동기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만화에도 나오는 흔한 시나리오들 이지....사라질 운명에 처한 캐릭터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에게 흔적을 보존해 달라고 하는 스토리 말이야....
그걸 볼 때마다....너무나 뻔한 전개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이 소멸에 직면한 인간의 심리..
라는 테마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 다는 거지...
언젠가 인간은 죽게 되는 것인데 그걸 자각하고 살지 않는 자가 많지....
특히 한국인들은 더 그런 거 같애... 당연한 것이 죽음인데 그걸 부정하는 의식이나 치르고...
모두들 죽음의 필연성이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좀 더 진정성을 갖고 살게 되지 않을까..
마침 생각이 나서 육도삼략을 펼쳐 보니 책의 겉표지에 이런 글귀가 있군....
".....군사학은 목숨을 다루는 것이라 위선과 자기기만의 헛소리가 없는 학문이다....."
일본인들의 군사학책에는 사실 헛소리가 제법 있지... 허나 유럽은 상대적으로 진정성이 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일본도 사실 전란의 시대는 많지 않았던 때문 아닌가 싶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전란이 있었던 유럽의 창의성이 결국 세상을 압도한 것도 결국 당연한 필연이 아닐까 생각함.
狂工크랜 2007/12/10 17:43 # 답글
창의적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감을.. 분명히 느껴야할만한 상황인데도 못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실험 조교로 들어가서 보는 학부생들한테서 말이죠 ㅡ,.ㅡ;;어찌보면 가장 그 고민을 많이 하고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어디인가를 고민해야 할 중,고등학생 시절에 부모와 학교로부터 '남들처럼 대학만 가면 다 된다'라는 식의 교육을 받는 것이 문제일 것 같기도 하군요.
언제나 남들만큼, 남들과 같은 길을 어떻게든 '평범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으려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지요.. 좀 더 많은 위기를 넘기고 시련을 겪다보면 체감을 하게 될런지..
..라지만 제 자신도 좀 반성해야겠습니다. ㅠㅠ